‘나는 행복했습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
104세 철학자 김형석 명예교수와의 만남
시대를 이끌어 왔던 사상의 은사들이 세상을 등지고 우리 곁을 떠났지만, 올해 104세가 되신 철학자 김형석 명예교수님은 세월의 나이가 무색하게 집필과 강연 등 왕성한 활동을 하시며 우리에게 100년의 지혜를 전하고 계십니다.
김형석 명예교수님은 1920년 평안북도 운산에서 태어나 평안남도 대동군(현재 평양시)에서 자랐습니다. 기독교 학교인 평양 숭실중학교를 거쳐, 일본 조치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고, 고향에서 해방을 맞았지만 1947년에 남한으로 내려와 서울중앙중고등학교의 교사와 교감으로 학생들을 가르치셨습니다. 1954년부터 1985년까지 31년 동안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계시면서 한국 철학계의 기초를 다지고 후학을 양성했습니다. 교수님은 윤동주 시인, 황순원 소설가와 함께 공부했고 도산 안창호 선생의 설교를 듣고 가르침을 받은 살아있는 현대사입니다.
1985년 국민훈장 모란장과 2021년 국민통합상 등을 받으신 교수님은 철학자이면서 수필가로 지금까지도 행복한 일을 멈추지 않고 계십니다. 교수님은 ‘철학 입문’ ‘역사철학’ ‘종교의 철학적 이해’ 등 철학서 외에도 ‘고독이라는 병’ ‘영원과 사랑의 대화’ ‘백년을 살아보니’ 등 수필집과 최근 ‘100세 철학자의 행복론’을 펴내 백년의 경험과 사색의 고갱이를 아낌없이 나눠주고 계십니다.
김형석 명예교수님은 서해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 용유도의 한 곳에 집필실을 마련해 두고 시간이 될 때면 찾아오셔서 사색과 집필을 하고 계십니다. 인천공항뉴스에서는 지난 12월 11일 교수님을 찾아 백년의 가르침을 들어보았습니다. 교수님의 일정이 허락되면 따뜻한 계절에 교수님의 초청 강연 자리도 마련할 계획입니다. (편집자 주)
영종도에도 100세 넘는 어르신이 12분이 계시는데 104세가 되시는 교수님보다 건강한 분은 없으신 것 같습니다. 많이 들으셨겠지만 건강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나는 어렸을 때 남들과 달리 건강하지 못했어요. 어머니는 내가 20세까지 사는 것만 봐도 좋겠다고 하셨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려서부터 과로나 무리는 하지 않았어요. 100을 할 수 있어도 90에서 멈춥니다. 늘 여유를 두는 것이지요. 오래 사는 사람은 절대 무리를 하지 않아요. 신체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오래 사는게 아니고, 무리하지 않는 사람이 오래 사는 것 같아요.
하루에 일과는 아침 6시에 일어나 가벼운 체조를 하고 간단한 식사를 합니다. 점심과 저녁은 영양가 위주로 생선이나 고기를 먹습니다. 밤 10시 30분에서 11시쯤 잠자리에 듭니다. 운동은 50세 때부터 꾸준히 수영을 해왔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못하고 있어요. 또 하루 한 시간쯤 산책을 하는 시간을 가져요. 원고 내용을 사색하기도 하고 강연 내용을 정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운동이 건강을 위해 필요하다면, 건강은 무엇을 위해 있는가 하는 건데, 나에게 있어서 건강은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입니다. 일이 건강의 비결인 셈이지요. 100년을 살아보니 일하는 사람이 건강하고 노는 사람이 건강하지 못한 것을 알겠더군요.
영종에는 자연환경이 좋아 은퇴를 한 시니어들이 많이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즐거운 노년을 보낼 수 있을까요?
고령화 문제는 일본에서 이미 50년 전에 화두였습니다. 일반적인 결론은 세 가지인데 첫째로는 60세가 넘으면 무조건 공부해라 입니다. 지금까지 못했던 공부를 다시 시작하라는 것과 독서를 많이 하라는 뜻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절대로 놀지 말라는 것입니다. 노는 사람은 인생을 잃어버리고 일하는 사람은 인생의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봉사 활동을 해도 좋고 무슨 일이든 좋으니 일해야 합니다.
진정한 봉사 활동을 해본 사람은 아는데요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 같지만 그 활동을 통해 내가 더 보람을 느끼고 행복해져요. 세 번째는 취미활동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노년이 되어 새로운 행복을 찾는 방법은 공부하고, 일하고 취미생활을 시작하는 거에요.
인생은 3단계가 있는 것 같아요. 30세까지는 나를 키우는 단계고 65세까지는 일하는 단계, 그리고 90세까지는 사회를 위해 일하는 단계로 나눠 볼 수 있는데, 나는 마지막 단계가 제일 재미있고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 하나만 낳는 가정이 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 교육을 무엇보다 신경쓰는데 자녀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현명한가요?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자녀 교육에서 방임은 아니지만 자연스러운 성장을 중요시 했어요.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은 어머니들의 욕심과 교육 당국의 간섭 때문에 후퇴하고 있다고 봐요. 나는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아들 둘과 딸 넷을 키웠는데, ‘평범하게 자라서 주어지는 일에 최선을 다해라. 가능하다면 주어진 분야의 지도자가 되어라’이런 교육 방침이 있었어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에는 그 사람의 자유를 소중히 여긴다는 전제 조건이 있어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고 할 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자유는 곧 선택인데 ‘이걸 해, 저걸 해’가 아니라 ‘이런게 있고, 저런게 있어. 너는 어떤 걸 할래?’ 이렇게 선택의 자유를 줘야 해요. 자녀들을 키울 때 아이들의 자유를 소중하게 여기면, 그들이 삶을 헤쳐나갈 힘이 생겨요. 물론 아이가 어릴 때는 보호해주고,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사춘기 까지는 손을 잡고 같이 걸어가야 해요. 그다음에는 아이를 앞세우고 부모는 뒤에 가야 해요. 나는 거기에 사랑이 있다고 생각해요. 인생은 50세가 되기 전에는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아이가 50세쯤 되면 어떤 인간으로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요. 좋은 고등학교 가고 소위 일류대학에 가는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마세요. 천천히 성장하며 자기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삶이 행복해요.
정치가 국민들을 편하게 하고 걱정을 덜어주어야 하는데, 지금 상황을 보면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점점 더 양극화가 심화되고 갈등과 혐오가 커지는데 그 원인과 해법은 무엇일까요?
갈등이 없는 사회는 위험한 사회입니다. 갈등은 경쟁인데, 인간은 자유가 있기 때문에 경쟁하게 되어 있습니다. 경쟁에는 세 단계가 있는데 낮은 단계는 모든 경쟁을 이기적인 경쟁으로 끌어내립니다. 이 이기적인 경쟁을 ‘상대방도 인정하고, 나도 인정받고 싶고, 또 나도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선의의 경쟁으로 바꿔야 합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내로남불로는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없습니다.
또 지적하고 싶은 것은 토론이 없다는 거에요. 민주주의의 갈등 해소 방법인 토론이 실종되면서 내가 한 건 무조건 옳고 네가 한 건 틀렸다는 사고방식은 안 돼요. 이 사고방식을 바꾸지 못하면 우리 역사가 불행해지거나 잘못될 겁니다. 나 또는 우리쪽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유능한 인재들을 찾아내서 키워야 미래가 있습니다.
새해가 되면 모두 ‘건강과 행복’을 이야기 합니다. 최근 ‘100세 철학자의 행복론’을 펴내시기도 했는데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행복은 목적 개념이라기보다는 인간답게 살았을 때, 내게 주어진 책임을 다했을 때 주어지는 느낌, 그때 갖게 되는 정신적 보람, 아마 그렇게 봐야 할 것 같아요.
나보고 100세까지 사셨으니 행복하냐고 물으면 ‘젊었을 때는 그런대로 즐겁게 살았고, 교수 생활할 때는 나름대로 성공했고, 늙어서는 그래도 사회에 무엇인가 조금씩 주고 있으니까 행복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사시면 아마 행복하실 겁니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재산이나 권력, 명예 같은 것을 소유하기를 원하고 그것을 얻었을 때 만족감을 느끼고 그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들은 소유에 해당하기 때문에 상실했을 때는 고통과 불행으로 바뀌게 돼요.
경제적인 것이 3분의 1, 정신적 가치가 또 3분의 1, 그리고 사회적 보람까지 느끼면 100% 만족한 행복한 삶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다 맡아서 내 인격을 갖추게 되면 행복은 자연히 따라오니까 누구든지 행복하게 살 권리는 있다고 봐요.
살아보니 행복은 주어지거나 찾아가는 것이 아니었어요. 언제나 우리들의 생활과 삶 속에 있었습니다. 나는 사랑이 있는 곳에 언제나 행복이 함께 한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깨달았어요. 나는 행복했습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