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1(목)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URL
기사입력 : 2022.05.31 06:54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만남과 이별을 대하며


새 가족 등록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만남이 많다는 것은 목사로서 행복입니다.


가수 노사연 씨의 ‘만남’이란 노래 속에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솔직히 가사가 여기까지 밖에 기억이 안 나지만,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만남 속에 우연은 없습니다. 만남 속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기대가 됩니다. 우린 부모님과의 최초의 만남으로부터 시작해서 이 땅에서의 마지막 순간까지 누군가를 만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죽고 난 후에 눈을 뜰 때, 영원한 존재들과 새로운 차원의 만남에 놀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만남은 설렘으로부터 시작되지만, 만남 뒤에는 이별이라는 그림자가 공존한다는 사실이 우릴 아프게 합니다. 부모도, 가족도, 친구도, 이웃도, 사랑하는 연인과의 만남도 예외는 아닙니다. 살면서 만남과 이별은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낯선 사람이나 환경을 처음 대할 때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반대로 지나친 애착으로 이별을 감당치 못해서도 안 됩니다. 만남과 이별에 너무 무관심해도 안 되고 너무 집착해서도 안 되기에 우린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믿는 사람이 가져야 할 전제는 만남과 이별 속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입니다.


만남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기대가 됩니다. 때로는 따뜻한 말 한마디로도 만남의 축복을 누리기도 하지만, 대체로 만남이 축복되기 위해서는 움직여야 하고 노력이 뒤따라야 하고 투자해야 합니다. 무관심과 이기심은 불행한 이별을 낳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이별도 있지만 대부분의 이별은 노력의 부족에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멀리서 사는 친척이나 친구와 전화 한 통 없이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되면 결국 멀어지고 만남도 사라집니다.


그러나 이별 속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기에 반드시 손해만은 아닙니다. 이별은 아쉽지만, 또 다른 만남을 위한 준비이며 서로를 위한 하나님의 선이기에 축복하며 보낼 수가 있습니다. 살면서 누구에게나 만남이 축복되고, 이별이 상처를 남기지 않도록 하는 것은 부자가 되는 것보다 야망을 이루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목회를 하면서 만남은 언제나 설레고 행복했지만, 이별은 언제나 아팠습니다. 만남과 이별이 반복될수록 그런 감정이 무뎌질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아직도 만남은 행복하고, 이별은 아쉽고 아픈 것은 아직 미숙해서일까요? 그래서 나름 터득한 방법이 있다면, 헤어질 때 인사를 잘하는 것입니다. “어딜 가든 하나님과 동행하세요” "그리고. “다시 만나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보다 큰 복은 없고, 언젠가는 다시 만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는 두 번의 교회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이별이라 아팠고, 또 다른 사정으로 아팠습니다. 그럼에도 헤어지는 인사를 잘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 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그곳에서 다시 만납시다” 참석한 교우들과 함께 찬송도 불렀습니다.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목회단상 > 만남과 이별을 대하며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