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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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람에서 무덤까지 함께 하는 교회
    교회 주보를 보면, 혼사와 장례 소식이 실립니다. 요즘은 혼사보다 장례 소식이 주보에 더 많이 실립니다. 인구추세로 보면 앞으로 이런 현상은 더 분명해질 것입니다. 개척 교회 때는 성도의 가정이 슬픔을 당할 때면 목사는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더 많은 인원의 교인들이 장례예배에 참여한다면 더 큰 위로와 힘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소수정예(?)로 가서 예배드릴 때가 많았지만 마음만큼은 정성을 다하여 섬겼습니다. 지난 주간은 장례가 두 군데가 겹쳐서 있었습니다. 한군데는 전라남도 곡성, 또 한군데는 강릉이었습니다. 곡성은 부교역자님과 청년들이 가고, 강릉은 제가 가서 장례를 집례하였습니다. 장례 기간 국토의 동서를 두 번 횡단하며 감사한 마음이 있습니다. 많은 분이 한마음으로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슬픔을 당한 지체를 위로하는 모습에 개척 교회 때를 떠올리며 새삼 감사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피곤하지 않고 오히려 힘이 났습니다. 장례식장을 드나들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장례식을 교회에서 하면 어떨까?’ 요즘은 교회에서 교인의 결혼식을 치르는 것도 흔치 않아 보입니다. 최근 재벌가의 결혼식을 정동교회에서 올린 것이 뉴스가 되었습니다. 전에는 교인 집안의 결혼식은 대부분 교회에서 올렸고 당사자들도 충분한 시간 활용 및 신앙의 이유로 만족했었습니다. 좋은 전통은 다시 살려 나가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서 장례예배도 자신이 몸담고 섬겼던 교회에서 드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제가 알기로는 공로가 있는 목사님이나 장로님의 장례예배를 교회장으로 치르는 경우는 있지만, 평신도의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천주교는 성당 내 여건이 허락된다면 장례는 물론이고 성당 내 납골당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물론 일부 대형 성당의 예입니다. 개신교인들은 평생 교회를 다녀도 죽어서는 교회를 떠나 병원 장례식장에서 3일을 보낸 후 떠납니다. 옆 빈소에서 들리는 타종교 예식, 곡소리, 향 냄새, 술 냄새, 심지어 화투 소리까지 어수선합니다. 예배드리는 한쪽 옆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한담하는 것도 거슬립니다. 그래서 교회에서의 장례식을 생각해 본 것입니다. 물론 신학적인 지지, 제반 시설 등 현실적으로 타당한 조건을 갖추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조건만 된다면, 평소 천국 복음을 듣고 많은 시간을 보내었던 자신의 교회에서 천국 환송까지 한다면 좀 더 평안한 마음으로 임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교우들이 참여할 수 있는 편리함도 있으며, 그로 인한 신앙적인 유익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더욱 유익하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으니까요. 교회가 교인의 마지막 길까지 함께 한다는 것은 큰 위로가 됩니다. 그야말로 교회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축복받으며 출생해서 애도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하는 영적 가족의 정서가 진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혼인 예배를 드리는 예식 공간이 될 수 있다면, 천국으로 환송하는 장례 공간도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혼자만의 생각이고, 당장 실현할 수도 없지만 말입니다. 어찌 되었든 교회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함께 하는 공동체임은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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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단상
    2022-07-13

실시간 목회단상 기사

  • 목회단상 > 모든 것이 은혜, 모든 것을 감사
    장윤석 (하늘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오지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 이야기입니다. 그곳 추장과 마을 사람들은 새벽마다 동쪽을 향하여 무수히 절하며 제사를 드립니다. 선교사가 물었습니다. "매일 아침 무슨 제사를 드립니까?" "해님을 모셔 올리는 제사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해님을 모셔야 해님이 둥실 떠오르시고 하루가 시작됩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하루하루가 저절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자신들이 정성을 들여 제사를 드려야 해님이 떠오르고, 그런 후에야 자신들도 하루를 살 수 있게 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들이 ‘미개하구나.’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당연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소중하게 정성을 들여서 받는 자세를 보아야 합니다. 이 말을 듣고는 선교사가 제안합니다. "우리 고향에서는 수탉이 그 일을 대신합니다. 여기서도 닭들에게 햇님을 모셔 올리는 일을 시키면, 당신들은 아주 편하게 될 것입니다." 설득 끝에 그렇게 해 보기로 합의가 되었습니다. 선교사가 수탉을 구해서 마을로 들여왔습니다.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은 제사 없이 초긴장 속에서 일출의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수탉이 크게 홰를 치며 울어댔습니다. 그러나 해님은 무소식이었습니다. 수탉이 다시 한번 울어댔으나 역시 해님이 나타나지 않자 두려움이 그들을 엄습했습니다. "해님이 노하셔서 영영 안 나오시면 우리는 어떻게 살지?" 그때 다시 한번 닭이 목을 길게 늘여 울어대자, 해님이 방긋이 이마를 드러냈습니다.   만세! 환호성이 메아리쳤습니다. 이젠 우리가 새벽마다 고역을 겪지 않아도 되는구나! 부족 사람들은 기뻐했습니다. 아침마다 그 기쁨은 여전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달이 지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 당연지사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루의 시간은 저절로 오는 것이지 전처럼 정성으로 받들어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의 삶은 생기를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해님의 떠오름, 더 정확히 말하면 하루의 시작이 감격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해님의 떠오름을 기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자연히 하루의 삶을 감사하는 마음도 없어졌습니다. 우리도 하루를 이와 같이 맞이하기 쉽습니다. 어김없이 아침이 오지만, 어제의 하루와 오늘의 하루는 같은 하루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루하루를 새날로 빚으셔서 우리에게 선물해 주십니다. ‘은혜’라는 찬양 가사를 옮겨봅니다.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아침 해가 뜨고 저녁의 노을, 봄의 꽃향기와 가을의 열매,  변하는 계절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 한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것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루하루는 모두 특별한 것입니다. 감사와 감격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은 이렇게 특별한 하루하루의 이어짐입니다. 혹 마음에 감사가 사라지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인생의 제로 점에서 서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알 때,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는 바로 나에게 특별하고 새로운 하루하루를 선물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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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단상
    2023-11-22
  • 목회단상> 산기도 다녀온 날의 행복한 단상
        장윤석 (하늘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마지막 주 목요일은 산기도 가는 날입니다. 단풍 드는 가을이라 큰맘 먹고 먼 길을 나섰습니다. 목적지는 강원도 치악산에 있는 수양관. 차가 밀려 예상보다 한 시간 늦게 도착했습니다. 그 때문에 두 시간 기도를 한 시간으로 줄였습니다. 멀리 와서 분위기가 좋아서 그런지, 기도 시간이 짧아서 그런지, 성령 충만해서 기도가 잘 되는 곳이어서 그런지 모두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쩌렁쩌렁 기도 소리에 마귀가 두려워 쫓겨가는 듯했습니다. 1시간 종료를 알리는 벨이 울리자 모두 아쉬워했습니다. 기도가 이렇게 잘되다니! 어떤 분은 “이젠 기도 1시간이 금방 지나가요.”라고 말씀합니다. 자~ 이젠 밥 먹으러 갑시다. 차를 타고 예약된 식당으로 갔습니다. 제천의 향토 맛집이라는 명판이 붙어있습니다. 단아한 한옥이었는데, 들어가 보니 황토와 나무 공예로 장식된 실내가 정겹습니다. 늦은 점심이라 시장해서 그런지, 분위기가 좋아서 그런지, 장맛이 좋아서 그런지 맛있게 먹었습니다. 연신 ‘이것 좀 더 주세요, 이것도 좀 더 주세요’ 열심히 먹었습니다. 돌솥을 긁어서 숭늉까지 먹고 나니 세상 부럽지 않습니다. 자~ 이젠 먹었으니 단풍 구경 갑시다. 바로 곁에 ‘베론 성지’라고 하는 곳에 갔습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산은 이미 가을 색이 되어 눈요기가 되었습니다. 목적지에 내려 보니 아름다운 단풍과 낙엽이 쌓인 동산, 잔잔한 가톨릭 성가 소리까지, 큰 기쁨을 선사하고 있었습니다. “권사님들, 여기에 서 보세요. 자~찍습니다. 하나둘 찰칵!” 몇 발짝 더 가서 “여기도 한 번 서 보세요, 찍습니다. 찰칵” 찍어드리긴 했지만, 원체 그쪽으로는 똥손이라 잘 나올지 장담은 못 하지만 행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 산과 나무를 아름답게 물들여 놓았다고 생각하니 감사가 절로 나옵니다. 무엇보다도 기도하는 권사님들 모시고 나와서 기도도 하고, 밥도 먹고, 가을도 만끽하니 참 행복했습니다. 자~이젠 퇴근길 정체되기 전에 빨리 돌아갑시다. 속히 승차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성도님이 정성껏 준비해 주신 간식 덕분에 여행길의 즐거움을 더 했습니다. 무엇보다, 요것조것 예쁜 포장지에 선물처럼 간식을 준비해 주신 분은 무려 ‘새가족’이었음에 감격이었습니다. 또 다른 누군가 준비해 온 주먹밥과 찐 고구마까지 먹으며 지겨울 겨를 없이 무사히 귀가했습니다. 종일 운전하고, 똥손의 사진사까지 자청했지만 전혀 힘들지 않고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아름답고 화창한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가을의 향수는 왠지 모를 슬픔의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라디오에서 조용필이 부른 ‘산장의 여인’이라는 가을 노래가 들립니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단풍잎만 차곡차곡 떨어져 쌓여 있네...” 가사가 구슬픕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마음으로 가을을 노래하는 이도 있습니다. 송창식이 부른 ‘푸르른 날’이라는 노래입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단풍이 드는 가을에 그리운 사람을 찾아보자는 뜻으로 읽힙니다. 이처럼 같은 가을을 보며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선택은 우리가 합니다. 단풍이 물들어가는 가을에 우리 신앙도 더 깊고 고운 성화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소중한 사람들과 만나 추억을 나눌 뿐 아니라, 복음도 함께 나누는 행복한 가을이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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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단상
    2023-11-15
  • 목회단상 >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분들에게
    장윤석 (하늘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정신과 의사인 빅터 프랭클 박사는 2차 대전 당시 악명 높았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생존한 인물이다. 그는 극한의 상황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의미치료’라는 심리치료법을 고안했다. 당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는 자살하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지 못하게 했다. 또 자살하려는 사람의 목에 걸려 있는 줄을 끊는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방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빅터 프랭클은 두 사람의 자살을 막았던 일을 그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 기록하고 있다. 두 사람 자살 동기는 모두 ‘삶으로부터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다’라는 것이었다. 이 말은 지금도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이런 사람에게 삶의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생명을 살리게 될 것이다. 자살하려 했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또 다른 사람은 과학자로, 책을 집필 중이었는데 아직 완성하지 못한 상태였다. 아이에게 아버지를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책을 집필하는 일은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비록 죽음의 수용소라 할지라도 인생에 무언가 기대할 것이 있다면 살려고 할 것이다. 두 사람은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되면서 그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 프랭클은 수감자들이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생존의 의미’를 깨우쳐 주었다고 한다. ‘의미’를 찾지 못함은 곧 파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나이 지긋한 의사 한 분이 우울증 때문에 빅터 프랭클에게 상담을 받으러 왔다. 그는 2년 전에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상실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아내를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했었다. 플랭클은 그에게 “만약 선생께서 먼저 죽고 아내가 살아남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대답했다. “오! 세상에!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을 생각해 보면, 그것은 아내에게 아주 끔찍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것 보세요. 선생님. 부인께서는 그런 고통을 면하신 겁니다. 대신 지금 선생님이 그 고통을 안고 계십니다. 그 대가로 선생께서 살아남아 부인을 애도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분은 조용히 일어서서 감사의 인사와 함께 악수를 청한 후 진료실을 나갔다고 한다. 오늘 우리도 현실이 어려울수록 더욱 살아야 할 이유와 목표를 찾아야 한다. 찾고자 하면 아무리 절망스러운 상황이라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최근 10년 넘게 우리나라가 OECD 회원국 중에서 자살률이 1위라고 한다. 반면 출산율은 꼴찌이다. 행복지수는 뒤에서 3번째로 낮다.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떠오르는 말씀이 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10:13) 하나님은 사람을 존귀한 존재로 지으셨다. 한 사람 한 사람을 개별적으로 사랑하시고, 그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삶을 회복시킨다.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꿈을 발견하는 순간 힘겨운 세상이라도 다 이겨내고 살 수 있는 “삶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11월/26일 새생명축제를 통하여 우리의 소중한 사람들이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며, 인생의 방황을 마치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값진 시간이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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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단상
    2023-11-01
  • 목회단상 > 가장 중요한 그 무엇!
      살아가면서 아픔을 많이 겪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의 아픈 경험은 거의 사람 때문이었습니다. 관계가 깨어지는 아픔은 가장 큰 아픔입니다. 가까운 사람이 사고나 병이나 불행한 일을 당할 때, 그 아픔이 전달됩니다. 우리의 삶은 더불어 삶아갑니다. 아픔이 없을 순 없지만, 여전히 곁에 소중한 사람들이 있기에 행복합니다. 목사로서 저의 존재는 교회 안의 지체들이 있기에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교우들을 더욱 사랑합니다. 성도는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에 소속되면서 천국의 가족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가집니다. 하나님은 그 새로운 정체성으로 서로 사랑하며, 세상을 향하여 가장 중요한 그 무엇이 있음을 전하라 하십니다. 혁신의 아이콘이자 애플의 전 CEO인 스티브 잡스는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출생과 동시에 버림받았다는 사실은 그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무엇이든 완전히 통제하려 드는 그의 집착은 출생과 성장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어쩌면 그의 인생 전체가 버림받은 것에 대한 분노를 해소하려는 노력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려고 교회도 다녀 보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다 지워 놓지 않는 그런 하나님은 필요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저버립니다.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리라고 결심합니다. 그는 1976년 창고에서 애플을 창업합니다. 아이맥에 에어팟 아이폰 아이패드를 잇달아 성공시킴으로 애플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시켰습니다. 안타깝게도 사업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2004년 췌장암 선고를 받습니다. 치열하고 긴 투병 끝에 결국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는 죽기 전에 “내 인생은 전형적인 성공의 모습이다. 하지만 나는 일 빼놓고는 즐거움이 없었다. 재산도 익숙해진 삶의 일부분이었을 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 병상에 누워 내 삶 전체를 회고해 보건대, 자부했던 그 많은 명성과 재산은 막 닥쳐올 죽음 앞에 희미해져서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라고 고백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의 명성과 재산보다 ‘더 중요한 그 무엇’은 무엇일까요? 생명이죠. 죽음 이후 자신의 존재에 대한 준비이죠. 인간의 작은 두뇌로 창조주 하나님의 높은 뜻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그분의 말씀인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 길만이 생명이요 영원한 행복의 길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속죄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주 예수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되며,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게 됩니다. 11월 26일은 “새생명 축제”가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가졌지만 죽음 앞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고백했던 것들을 인생의 목적 삼고 있는 주변의 소중한 분들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그 무엇이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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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단상
    2023-10-18
  • 목회단상 >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하여 한 마을이 필요합니다
      장윤석 (하늘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국력은 인구 숫자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싱가포르가 1인당 국민소득 5~6만 불, 아시아 1위이지만 한국, 일본, 중국의 국력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인구 때문입니다. 인도는 열악한 사회환경 등으로 여행조차 꺼려지는 국가로 알려졌지만 장래가 어둡지만은 않습니다. 최근 인도 총리가 연설 중에 “인구의 65%를 차지하는 8억 명의 젊은이들이 있는데 우리가 무엇을 걱정하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인도의 평균 연령이 28세, 가난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젊은이와 어린이들을 보면 총리의 말이 단순히 자찬은 아닙니다. 이에 비하여, 2023년 평균 출산율 0.78명, 인구절벽, 지금 한국 사회의 현실입니다. ‘식스 포켓’이라는 말을 아시나요? 한 명의 아이를 기르기 위해 부모, 조부모, 외조부모까지 총 여섯 명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요즘처럼 아이 보기 힘든 시대에 손주에게 아낌없이 지출하는 풍조를 알아차리고 어린이를 마케팅 대상으로 삼는 기업들이 자주 쓰는 말이라고 합니다. 집안에 아이 한 명이 그렇게 소중하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프리카 속담에도 ‘아이 한 명을 키우기 위해 한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사회 곳곳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은 우리의 미래라고 입을 모아 외칩니다. 하나님께서도 “생육하고 번성하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생육과 번성이 곧 하나님의 꿈이며, 우리 사회의 힘과 미래가 됩니다. 사회는 가정 당, 한 명씩 있는 자녀들을 잘 기르기 위한 과열된 경쟁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의 관심은 믿음의 계승에 있어야 합니다. 신앙교육이란 말을 하면 사람들이 교회 교육 프로그램부터 떠올리겠지만 ‘신앙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 형성되는 것입니다.’ 교회와 가정에서 신앙이 형성될 수 있는 장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그 양육은 실패하고 맙니다. 무엇보다 일상에서 어른들이 신앙의 본을 보여주지 못하면 교육은 실패할 것입니다. 본을 보이는 것, 이것이 모든 교육의 기본입니다. 10월 세대 통합 예배를 드립니다. 3대가 함께 예배드리는 가정도 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처음으로 어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예배에 방해되니 따로 분리해서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신앙교육을 해야 한다는 사고는 버려야 합니다. 눈높이 교육도 필요하지만, 아이들이 어른들의 예배를 보고 배우도록 해야 합니다. 자라면 저절로 다 할 것으로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본 것이 없으면 어른이 되어도 할 수 없습니다. 내 자녀가 아니라도 우리의 자녀라는 생각을 꼭 가져 주십시오. 우리 교회의 자녀이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와 우리 미래의 자녀들입니다. 오늘 옆자리에 아이가 앉았다면, 귀에다 대고 “너 때문에 세상이 행복하단다.”라고 말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관심 어린 눈빛과 다정한 말을 통해 아이의 신앙은 선하고 아름답게 자랍니다. 무엇보다 예배 중에 흐르는 영성이 아이들의 신앙을 형성합니다. 앞서 ‘아이 한 명을 키우기 위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을 말씀드렸는데, 이는 우리가 그렇게 한 마을처럼 다 연결돼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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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11
  • 목회단상 > 행복한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장윤석 (하늘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시편은 복 있는 사람을 위한 말씀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흔들리지 않고 그의 선택이 분명합니다. 특히 죄에 대해서는 타협이 없습니다. 죄는 바이러스처럼 전염성이 강합니다. 한 번 문을 열면 곳곳에 영향을 미칩니다. 심지어 시대를 넘나들며 영혼을 무너트립니다. 반면 행복의 파급력은 죄의 전염성을 넘어섭니다. 제아무리 죄의 어둠이 칠흑 같다 할지라도 한 줄기 빛이 비치면 어둠이 설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행복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의인의 길을 선택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비추는 햇살입니다. 종교개혁의 상징적인 인물이 루터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종교개혁을 위해 100년 전 이미 한 사람을 준비시키십니다. 체코의 얀 후스는 교회의 면죄부 판매를 공개적으로 비판합니다. 교회가 진리 위에 설 것을 촉구합니다. 결국 후스는 고문당하고 화형에 처합니다. “오늘 당신들은 볼품없는 거위를 불에 태우지만, 10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는 당신들이 영원히 태워 없앨 수 없는 백조의 노랫소리를 듣게 될 것이오.” 그의 마지막 유언은 100년 뒤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백조는 루터파의 상징 중 하나가 됩니다. 얀 후스 한 사람이 선택한 의인의 길이 루터에게로 연결되고 그 길 위에 우리가 있습니다. “이 죽음을 면하려고 내 믿음을 버리지 않게 주님 저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오직 일사각오가 있을 뿐이오니 이 목숨 아끼다 우리 주님 욕되지 않게 사망의 권세에서 나를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신사참배의 길에 서지 않고 의인의 길을 선택한 주기철 목사님의 고백입니다. 1940년 잠시 석방되신 후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다섯 종목의 나의 기도’라는 생애 마지막 설교를 합니다. 하나,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둘, 장기간의 고난을 견디게 하여 주시옵소서. 셋, 노모와 처자와 교우를 주님께 부탁합니다. 넷,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섯,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그 뒤로 100년이 안 되어서 여기에 우리가 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의 올바른 선택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행복은 멈추지 않고 계속 전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100년 뒤에 누군가 받고 누려야 할 행복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얀 후스처럼, 주기철 목사님처럼 죄인의 길이 아니라 의인의 길을 선택하며 나아가는 한 사람, 바로 그 한 사람인 우리를 준비하십니다. 우리 가정이 신앙의 아름다운 계승을 이어가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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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단상
    2023-09-27
  • 목회단상 > 공동체의 발전과 행복을 가져오는 자세
    장윤석 (하늘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우리는 살아가면서 분명한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첫째는 책임지는 자세입니다. 그것을 ‘주인의식’이라고 합니다. 어떤 모임이든지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과 손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은 책임을 집니다. 예컨대,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주인은 손님을 대접하며, 잔치가 잘되도록 이리 뛰고 저리 뜁니다. 반면에 손님은 차려 놓은 음식만 먹습니다. 다른 잔칫집과 비교해서 맛 타령을 합니다. 일이 되든 말든 나와 상관없습니다. 편하고 부담 없기로 말하면 손님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그런데 그 공동체가 발전하면서 누릴 기쁨과 영광은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에게만 주어집니다. 손님에게는 기쁨도 영광도 상급도 없습니다.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이 많은 공동체는 발전합니다. 성도님들도 주인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주인의식은 텃세를 부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처음 교회에 나온 분들도, 짧은 기간 머무는 분들도 주인의식을 가지세요. ‘이 교회, 저 교회’라고 하지 말고, ‘우리 교회’라고 말하세요. 교회를 사랑하고, 책임지는 자세로 섬기는 자에게 은혜와 축복이 있습니다.   둘째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자세입니다. 그것을 ‘지체의식’이라고 합니다. 몸에 많은 지체가 있는데, 눈, 코, 입, 팔다리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지체가 없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썩어서 죽는 것 아닙니다. 다 건강해도, 뇌로 가는 핏줄 하나 터지거나, 췌장 같은 작은 기관에 암세포 생겨도 생명을 잃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정원에 심은 소나무의 솔잎은 사시사철 푸르러 보기 좋았고, 줄기에 다닥다닥 달라붙은 거친 껍질은 영 못마땅했습니다. 그래서 거친 껍질을 다 벗겨내고 나니 속이 하얗고 말끔한 것이 목욕한 것처럼 참 시원했습니다. 그런데 그해 겨울 소나무는 얼어 죽고 말았습니다. 쓸모없는 것 같던 거친 소나무 껍질이 나무를 살리는 ‘생명 이불’ 이었던 것입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생명 역사에 한 부분입니다. 누군가는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지만, 교회는 부자든 가난하든 다 소중한 존재입니다.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지체의식을 가진 사람은 공동체를 통한 은혜와 축복을 더 많이 누리게 됩니다.   셋째는 약한 자에 대한 배려의 자세입니다. 그것을 ‘가족의식’이라고 합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고전12:26) 목만 부어도 온몸이 다 아프듯이, 아이가 열 40도를 오르내리며 끙끙 앓고 있는데, 부모가 코 골고 편히 잘 수 없습니다. 이마에 물수건을 대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것은 가족입니다. “그 녀석 아빠 보다 잘났네”라는 말을 듣고 시기심을 가진 아빠는 없습니다. 오히려 기분이 좋습니다.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가족은 허물을 덮어줍니다.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눕니다. 특별히 연약한 가족이 있다면, 더 배려합니다. 우리가 서 있는 공동체가 약한 자를 향한 배려와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고, 우는 자와 함께 울어 줄 수 있다면 더 행복한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도 한 분이시며, 예수님도 한 분입니다. 세상은 한 분 하나님 안에서 가족이며, 무엇보다 교회는 예수님 안에서 소중한 가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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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단상
    2023-09-20
  • 목회단상 > 깨어있는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장윤석 (하늘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어떤 일이든지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기도 하고, 또 한 사람이 맡은 역할이 가장 중요하기도 합니다. 한 사람 덕분에 성공하기도 하고, 한 사람 때문에 실패하기도 합니다. 성경에도 보면, 아담 한 사람 때문에 세상에 죄가 들어오고 사망과 저주가 들어왔습니다. 반면에 예수님 한 분 때문에 죄가 사하여지고 구원과 축복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아간 한 사람 때문에 이스라엘 전체가 실패했고, 비느하스 한 사람 때문에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의 긍휼을 입기도 했습니다. 9남 1녀를 자녀로 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목사님은 새벽기도 시간 자녀들이 깊은 잠에 취해 일어나지 못할 때면 아이들이 자던 방에 바가지로 물벼락을 내리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10명의 자녀는 때론 하수구에서 갓 나온 생쥐 같은 행색으로 새벽기도에 나가야 했습니다. 요즘 같으면 어림도 없어 보이지만 당시 자녀들은 참 감사하게도 잘 따라 주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혹독하게 자녀들을 깨운 후 목사님은 “한 사람만 깨어있으면 되는 거야!”라고 말씀하시곤 했답니다. 10남매는 지금도 그 음성이 귀에 쟁쟁하게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 자녀분들 모두 교회와 사회에서 훌륭한 분들로 자리를 잡고 있으며, 현재도 매일 새벽기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풍랑 만난 배에 탄 듯 멀미 나는 요즘입니다. 모두 깨어있지 않음이 문제가 아니라, 마땅히 깨어 있어야 할 내가 잠자는 것이 문제입니다. 깨어있는 한 사람으로 인해 가정과 교회는 일어서게 됩니다. 깨어있는 한 사람으로 인해 살아갈 소망 있는 나라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라고 하는 한 사람을 준비시켜 이스라엘 전체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 과정에 모세의 역할이 눈에 띄는데, 모세는 10번 이상 완고한 바로에게 찾아갑니다. 바로의 완고함은 극에 달했고, 노예 생활이라는 이스라엘의 상황은 그대로였습니다. 저는 성경의 이 부분을 읽으며, 한 사람 모세의 외로운 투쟁을 보았습니다. 누구도 모세의 투쟁을 도울 수도 없었고, 그것은 고스란히 모세의 몫이었습니다. 바로가 완전히 항복하기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의 짐을 지팡이 하나 짚고 외롭게 지고 나가는 모세를 닮고 싶어졌습니다. 바로는 도무지 넘을 수 없는 큰 산과 같았습니다. 그 앞에서 목숨 걸고 열 번도 넘게 하나님의 뜻을 외치는 모세는 꼭 예수님 같구나! 예수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투쟁하셨던 모습이 오버랩 되었습니다. 아~ 나도 모세와 같은 모습으로 서리라! 감히 모세의 길이 공감되면서, 주님의 음성으로 들려왔습니다. 주님이 주신 비전을 사명으로 받아서, 외치고 또 외치며 이 길을 가리라 다짐해 봅니다. 그 음성을 나누고 싶어 주보에 옮겨 봅니다. 한 사람의 믿음과 순종, 그리고 헌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이 시작됩니다. 모세와 같은 한 사람! 그렇습니다. 단 한 사람입니다. 오늘 세대 통합 예배를 드리며 오래 꿈꾸어 왔던 비전 스쿨의 출발을 선포합니다. 현실은 큰 산과 같지만 그래도 저는 외롭지 않습니다. 모든 교우 분들이 지지하고 함께 손을 잡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모세와 같은 그 한 사람의 자세를 가진다면 곧 꿈은 현실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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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단상
    2023-09-06
  • 목회단상 > 마음을 지키는 방법
        장윤석목사(하늘사랑교회)     사람의 마음은 넓습니다. 많은 돈을 가지고도 다 채워지지 않습니다. 마음보다 큰 것이 아니면 채워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렇게 클까요? 온 우주와 사람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면 채워집니다. 자족할 수 있고,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또 다른 영토입니다. 그 영토를 누가 사느냐에 따라서 마음이 평안할 수도 있고 불안할 수도 있습니다.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을 모시고, 그 마음에 일어나는 생각들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성경 말씀에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잠23:7)이라 했습니다. 종일 하는 생각이 그 사람됨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의 생각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지혜와 열정과 능력으로 살아갑니다. 마음이 어두운 사람은 밝아지고, 매사에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게 됩니다. 구하고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하나님이 이루신다고 하셨습니다. (엡3:20). 하나님은 좋은 생각들을 계속해서 품게 하십니다. 자기 능력과 환경의 어떠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실 계획들을 마음에 품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일들을 이루게 하십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2:13). 그 마음에 하나님을 모신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약할수록 더욱 하나님의 능력이 크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무슨 일을 만나도 이겨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만났을 때 다윗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의 생각은 패배자의 생각이 아니라, 승리자의 생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골리앗을 이기게 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장수들은 누구도 골리앗을 이길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모신 다윗만이 하나님의 계획을 마음에 소원으로 품고 나가서 이긴 것입니다. 무슨 일을 만나도 하나님은 우리의 한계 너머에 있는 계획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이겨낼 수 있습니다. 가족이 아파도, 슬픈 일을 당해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성경은 믿는 자들에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하느니라’ (수1:9) 항상 하나님을 마음에 모셔야 합니다. 생각을 오염시키고 마음에 염려와 두려움을 주는 문제들은 기도하며 하나님께 맡기면 됩니다. 대신 이기는 생각을 하며, 하나님께서 이루실 큰 소원을 비전으로 품고 일어나야 합니다. 이 마음을 품는 것을 마귀는 싫어합니다. 계속 염려와 두려움과 의심과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도록 마음을 공격합니다. 마음을 지켜내야 합니다.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 (잠4:23)   ‘내 마음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거룩한 것, 귀한 것, 복된 것만 받아들인다. 염려, 불안, 분노 이런 것은 다 물러가라.’ 이렇게 선포하며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성경 말씀대로, 교회에 대해서, 가정에 대해서, 자녀에 대해서, 이웃에 대해서, 좋은 마음을 품고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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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30
  • 목회단상 > 가슴이 웅장해질 꿈을 품읍시다
      장윤석 목사 (하늘사랑의교회)       부흥회를 앞두고 비를 구했더니 하루도 빠짐없이 부흥회 3일 내내 비가 내렸습니다. 내심 ‘하나님~ 혹시 잘못 이해하셨나요? 그 비 말고, 은혜의 비라고요’라고 기도했습니다. 놀랍게도 3일 내내 흡족한 은혜가 있었습니다. 저는 강사로 오신 임현수 목사님의 사역 규모에 놀랐습니다. 한 사람이 꿈을 품으니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일들이 이루어지는지 다시 확인했습니다.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품게 하신 소원이 있다면, 자기 능력이나 환경이 아닌 하나님의 크심을 믿고 기도하십시오. 소원을 주시고, 행하게 하시며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래전 미국의 한 소년이 호텔 보이로 일했습니다. 이 소년은 자기 자취방에 큰 호텔 그림을 붙여놓고 “하나님, 제가 이 호텔의 주인이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꿈을 위해 기도와 노력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꿈꾸고 기도하며 도전하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15년 후인 1949년 10월 소년의 꿈이 이뤄졌습니다. 소년은 남극 대륙을 제외한 모든 대륙 각지에 250여 개에 이르는 호텔을 세웠습니다. 그 호텔의 이름은 자신의 이름인 “콘래드 힐튼”을 따서 힐튼 호텔이라고 지었습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이은태 선교사님이 처음 뉴질랜드에 갈 때 갖고 있던 돈은 100달러가 전부였습니다. 이 선교사님은 꿈과 비전이 성취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 매일 기도했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자 많이 낙심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보여주신 건 그로부터 10년이 지나서입니다. 지금은 수 백억원 이상 가치의 선교센터와 아카데미 빌딩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엄청난 규모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 인물 다니엘도 소년 시절 바벨론 제국에 볼모로 잡혀가는 불운을 겪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뜻을 품고 지켜나갔습니다. 결국, 제국 내의 모든 박수와 술객보다 지혜가 10배나 더하여 총리가 되었습니다. 시기하는 정적들의 음모에도 그의 기도는 멈추지 않습니다. 하루 세 번씩 창문을 열어놓고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할 때, 사자굴 속에 던져졌지만, 다음날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고 살아 나왔습니다. 바벨론 제국은 망하고 페르시아 제국으로 바뀌어도 다니엘이란 인물은 여전히 건재하였습니다. 히스기야왕 역시 죽을 병에 걸렸을 때, 벽을 향하고 여호와께 간절히 기도하니 하나님은 15년 생명을 선물로 연장하여 주셨습니다. 야곱도 얍복강에서 환도뼈가 부러질 정도로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은 고통의 이름 야곱을 축복의 이름 이스라엘로 바꿔 주셨습니다. 저는 이번 부흥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루실 ‘통일’을 품게 되었고, 그날을 위해 기도하며 준비해야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가슴 웅장해지는 꿈을 품고 기도하며, 그 꿈을 향해 도전하며 나아갑시다.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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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단상
    202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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